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자신이 꿈꾸는 분야 멘토 찾아라"…이지훈 일리노이주 종신 연방판사

109년의 미주 한인 이민 역사상 종신제 연방판사 자리에 오른 한인은 3명에 불과하다. 샌프란시스코 제9항소법원에서 근무했던 고 허버트 최(1916~2004·한국이름 최영조) 판사와 2010년 임명된 캘리포니아주 북부지방법원 루시 고(43·한국이름 고혜란) 판사, 그리고 지난 13일 취임한 일리노이주 북부지방법원 이지훈(44·미국이름 존 이) 판사다. 그런 점에서 이 판사의 취임은 미주 한인사회 전체의 경사인 것이다. 17일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법원에서 이 판사를 만났다. -지난 주 취임식을 했는데, 공식 업무는 언제 시작했나. “취임식에 앞서 지난달 4일부터 연방판사로 업무를 시작했다. 취임식에서 알려진 바와 같이 수석판사로부터 300건이 넘는 사건을 배당받았다. 19일에는 연방판사로는 처음으로 시민권 선서식을 이끌게 된다.” -연방판사가 다루는 재판은 무엇인가. “이민을 포함해 반독점·특허 등 연방법의 적용을 받는 경우다. 또 사건이 2개 이상의 주에 걸쳐 있으면 연방법원에서 처리한다." -부모가 파독 광부와 간호사인데. “독일에서 태어난 후 잠시 한국에서 외할머니 손에 자라다가 네 살 때 시카고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미국에서 보석스쿨을 거쳐 보석상을 오래 운영하셨다. 8학년 때 현재 의사인 아내를 만났는데, 부모님끼리 서로 아는 사이여서 친해졌다. 자녀는 14살 캐슬린과 10살 노아, 둘이다. 두 명의 남동생은 각각 스탠퍼드대와 노스웨스턴대에서 기계공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취임식 당시 미국이름을 갖게 된 사연과 유치원에서 생긴 일을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유치원에 처음 가는 날 미국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평범한 이름 중 가장 괜찮다고 생각되는 존을 골랐다. 유치원에 갈 때는 영어를 잘 하지 못했는데, 빈 시리얼 박스를 가져오라는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콩이 든 캔을 가져갔다. 다행히도 선생님이 여분의 시리얼 박스를 주셨다. 이러한 경험들이 나 자신을 보다 겸손하게 만들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 판사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변호사를 거쳐 연방판사가 된 계기는. “하버드대에 진학해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는데, 자연스럽게 로마 시대 철학자이자 변호사였던 시세로(Cicero)를 알게 됐고 법률을 통해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진 뒤 법대에 진학했다. 법대 졸업 후에는 워싱턴 DC의 법무부에서 환경 문제와 관련한 일을 하게 됐다. 이후 로펌으로 옮겼지만 이는 다시 공직으로 가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연방판사가 되려고 한 것은 법대 졸업 후부터 가졌던 생각인 셈이다. 또 다른 한인 연방판사인 루시 고는 하버드 법대 2년 후배로 법무부에 같이 소속됐었다." -딕 더빈 연방상원의원이 추천을 했는데. “더빈 의원이 구성한 추천위원회에 신청서를 제출했고, 서류검토와 심층면접을 통해 추천을 받았다. 더빈 의원은 이전에 몇번 만나 인사를 나눈 적만 있던 사이였다. 몇 명의 후보자가 지원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명과 연방상원의 인준을 받았다. 내부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내가 지명을 받게 됐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아시안을 비롯한 소수계 연방판사의 숫자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연방판사가 되기를 바라는 한인 예비 법조인들에게 해 줄 조언은. “멘토가 중요하다.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이미 활약 중인 멘토를 찾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자주 접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현재 같은 법원의 제임스 홀더만 수석판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한인 젊은이들에게 멘토가 될 생각은. “환영한다. 사무실로 전화를 해도 좋고 e-메일을 보내도 좋다. 그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어떤 판사가 되고 싶은가. “일반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판사, 인간애를 가지고 법률을 다루는 판사로 기억되고 싶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했다. 갈 길이 멀다.” ◆종신제 연방판사=연방의원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지명한 후 상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와 본회의 인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법원 9명, 항소법원 179명, 지방법원 677명, 국제무역법원 9명 등 총 874명이 재직 중이다. 지방법원 판사 연봉은 17만4000달러다. 시카고=박춘호 기자

2012-07-19

[J 인터뷰] 이지훈(존 Z.) 연방판사, 미 연방판사 된 광부-간호사의 아들…이지훈 연방판사의 과거 현재 미래

시카고에는 두 명의 한인 연방판사가 있다. 지난 13일 취임식을 가진 이지훈(44•미국명 John Z. Lee)판사와 이보다 1년 앞서 취임한 김영배(미국명 Young Kim) 판사가 주인공이다. 두 명은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아버지가 파독광부였고 판사로 임용되기 전 연방 기관을 거친 점, 아시안아메리칸변호사협회, 한인변호사협회를 통해 커뮤니티봉사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점 등이다. 시카고 이민역사의 큰 축을 이룬 독일 광부의 아들 둘이 연방판사로 임명될 만큼 한인이민역사가 깊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 17일 오후 아직 정리도 덜 될 만큼 취임식의 설렘과 분주함이 남아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이지훈 판사는 시종 차분한 어조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했다. -지난 주 취임식을 가져는데 공식 업무는 언제 시작했나. “취임식에 앞서 지난달 4일부터 연방판사로 업무를 시작했다. 취임식에서 알려진 바와 같이 수석판사로부터 300건이 넘는 사건을 받았다. 19일에는 연방판사로는 처음으로 시민권 선서식을 이끌게 된다.” -연방판사가 하는 일은 어떻게 다른가. “연방법을 다루는 사건을 맡는다는 점이 큰 차이다. 이민을 포함해 반독점, 특허 등은 연방법이다. 또 사건이 두 개 이상의 주에 걸쳐 있고 7만5천달러 이상의 피해액을 낸 사건도 연방법원에서 처리한다. 같은 연방판사인 Magistrate Judge는 임기가 8년이지만 나와 같은 지역 연방판사(District Federal Judge)는 종신제고 연방상원 의원의 추천과 대통령의 지명, 연방상원의 인준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 다르다. 현재 북일리노이 연방법원에는 20명의 지역 연방판사와 Magistrate Judge, 파산판사 등을 합치면 70명이 소속돼 있다. -부모가 파독광부와 간호사였다가 어렸을 때 시카고로 이주했다. “독일에서 태어났고 잠시 한국에서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후 네 살 때 시카고로 이주했다. 아버지가 보석스쿨에 다니는 동안은 일리노이주 퀸시에서 살기도 했다. 아버지는 로렌스와 켓지길에서 보석상을 오랫동안 경영하셨다. 알바니팍과 피터슨팍에 살았고 고등학교는 로욜라아카데미를 졸업했다. 8학년때 현재 의사인 아내를 만났는데 부모님끼리 서로 아는 사이여서 친해졌다. 자녀는 14살 케이틀린과 10살 노아, 둘이다. 두 명의 남동생은 스탠포드대와 노스웨스턴대에서 기계공학과 경제학을 각각 전공했다.” -취임식 당시 영어 이름을 갖게 된 사연과 유치원에서 생긴 일을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유치원에 처음 가는 날 영어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평범한 이름 중에 가장 괜찮다고 생각되는 존을 골랐다. 유치원에서 갈 때는 영어를 잘 하지 못했는데 빈 시리얼 박스를 가져오라는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콩이 든 캔을 가져갔다. 다행히도 선생님이 여분의 시리얼 박스를 주셨다. 이러한 경험들이 나 자신을 보다 겸손하게 만들었다. 이는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하는 판사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변호사를 거쳐 연방판사가 된 계기는. “하버드대에 진학해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는데 자연스럽게 로마시대 철학자이자 변호사였던 시세로(Cicero)를 알게 됐고 법률을 통해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진 뒤 법대에 진학했다. 법대 졸업 후에는 워싱턴 D.C.의 연방법무부에서 환경문제와 관련한 일을 하게 됐다. 이후 로펌으로 옮겼지만 이는 다시 공직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연방판사가 되려고 한 것은 법대 졸업후부터 가졌던 생각인 셈이다. 참고로 또 다른 한인 연방판사인 캘리포니아주의 루시 고는 하버드 법대 2년 후배로 워싱턴 D.C.의 연방법무부에서 같이 소속됐었다.“ -딕 더빈 연방상원이 추천을 했는데. “상원의원이 조직한 추천위원회에 신청서를 제출했고 서류검토와 심층면접을 통해 추천을 받았다. 더빈 의원은 이전에 몇번 만나 인사를 나눈 적만 있던 사이였다. 몇명의 후보자가 지원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후 대통령의 지명을 받고 연방상원에서 인준을 받았다. 내부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내가 지명을 받게 됐는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후 아시안을 비롯한 소수계 연방판사의 숫자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연방판사가 되기를 바라는 한인 예비법조인들에게 해줄 조언은. “멘토가 중요하다.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이미 진출해 활약하고 있는 멘토를 찾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자주 접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나도 현재 북일리노이 연방법원의 제임스 홀더만 수석판사를 아시안아메리칸변호사협회 소속으로 만났었고 지속적으로 알고 지냈다. 또 로펌의 파트너와 연방법무부, 아시안아메리칸변호사협회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 역시 큰 도움이 됐다. 아울러 이미 연방판사가 됐던 영 김, 에드몬드 장 연방판사도 내가 판사가 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인 젊은이들에게 멘토가 될 생각은. “환영한다. 사무실로 전화를 해도 좋고 이메일을 보내도 좋다. 그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이제 막 취임을 했지만 어떤 판사가 되고 싶은가. “일반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판사, 인간애를 가지고 법률을 다루는 판사로 기억되고 싶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했다. 갈 길이 멀다.” <글•사진=박춘호 기자>

2012-07-18

[인터뷰] 연방판사 키운 파독 광부와 간호사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떠난 한국이지만 한 순간도 그 배경에서 벗어나본 일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자식 키우느라 앞만 보고 달려왔으나 앞으로는 한국의 그늘진 곳을 위해 시간과 건강을 바치며 살고 싶습니다.” 미주 한인 역사상 세번째로 종신직 연방판사에 오른 시카고 변호사 출신 이지훈(44·존 리) 판사의 아버지 이선구(72) 씨와 어머니 이화자(68) 씨의 바람이다. 이들은 연방 상원이 이 판사를 연방법원 일리노이 북부지원 판사로 인준한 다음 날 서버브 자택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이룬 아메리칸 드림’ 이후의 ‘새 꿈’을 이야기했다. 충남 연산 출신의 이선구 씨는 1965년 독일로 향했다. 고시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으나 경제적 형편 때문에 고민하던 중이었다. 독일에서 열심히 일하면 배고픔에서 벗어나고 공부할 기회도 가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대전 출신의 이화자 씨는 1966년 파독 간호사 1기로 한국을 떠났다. 시험에 당당히 합격해 자랑스럽게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켄 광산에서 일하던 이선구 씨는 프랑크푸르트의 병원에 배정된 이화자 씨와 고춧가루를 매개로 만났다. 한국에서 오는 간호사들 편에 배달된 고춧가루를 찾으러 프랑크푸르트에 갔다가 신붓감을 만난 것이다. 둘은 라인강변을 따라 운행되는 기차를 타고 3~4시간 거리에 있는 아켄과 프랑크푸르트를 오가며 만남을 가졌고 결혼했다. 첫 아기(지훈)가 태어났지만 일하며 키울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이화자 씨의 친정어머니에게 보내기로 했다. 이 판사가 생후 3개월부터 만 5세 때까지 대전의 외할머니 손에 자라게 된 배경이다. 계약기간이 끝났지만 독일 정착은 어려웠다. 영주권을 받을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 이민을 결심했다. 이 씨 부부는 1970년 삶의 터전을 시카고로 옮겼다. 이화자 씨는 병원에서, 이선구 씨는 공장에서 일하며 자리를 잡았고 1972년 아들을 데리러 대전을 찾았다. 이선구 씨는 “만 다섯살이던 아들은 당시 유행하던 하춘화의 노래 ‘잘했군 잘했어’와 은희의 ‘꽃반지 끼고’를 유창하게 불렀다”고 회고했다. 초기 이민생활은 쉽지만은 않았다. 남편은 새벽에 나가 오후 5시쯤 퇴근했고 아내는 오후 3시면 병원으로 출근했다. 낮시간 한동안 어린 아들 혼자 집을 지켜야 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아이를 혼자 두면 안된다는 법도 그때는 몰랐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큰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이화자 씨는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타이레놀을 주머니에 넣어서라도 학교에 보냈다. 강하게 키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씨 부부는 이 판사 이외에 대니얼(35), 데이비드(30) 두 명의 아들이 더 있다. 대니얼은 스탠퍼드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컴퓨터 컨설턴트로 일한다. 막내 데이비드는 노스웨스턴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수학교사로 재직 중이다. 이 씨 부부는 “아이들에게 ‘미국에 인종차별이 없다고 하지만 분명히 있다. 같은 조건이라면 백인을 선택한다. 남들 두 배 이상 노력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고 가르쳤다”며 “우리는 어렵게 살았지만 아이들만은 리더의 삶을 살기 바랬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현직 간호사인 이화자 씨는 이달 말 은퇴를 계획하고 있다. 이 씨 부부는 “올 가을에는 한국을 방문해 그늘진 곳에 있는 어린이들을 돌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지를 찾아보고 싶다”며 “그동안 앞만 보고 살아왔고 내 가족을 위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앞으로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밝혔다. [시카고=연합]

2012-05-09

한인 세 번째 종신 연방판사 임명…일리노이 북부지원 존 이씨

미 역사상 세 번째 종신직 한인 연방판사가 탄생했다. 상원은 7일 구두 표결을 통해 시카고 출신의 한인 존 이(한국이름 이지훈·44·사진) 변호사를 연방법원 일리노이 북부지원(시카고 연방법원) 종신 판사로 확정했다. 이 판사는 민주당 딕 더빈(일리노이) 상원의원의 추천을 통해 지난해 1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시카고 연방법원 판사에 지명됐었다. 이 판사는 이로써 아시안 최초의 연방판사였던 고 허버트 최(한국이름 최영조, 1916-2004)와 지난 2010년 한인 여성 최초로 연방판사가 된 루시 고(한국이름 고혜란·43)에 이어 세 번째 종신직 한인 연방법원 자리에 올랐다. 이 판사는 파독 광부 이선구씨와 간호사 이화자씨의 3남 중 장남으로 1968년 독일 아켄에서 태어났다. 가족을 따라 5세 때이던 73년 시카고로 이민온 이 판사는 하버드 대학(89년)과 하버드대 법대(92년)를 차례로 우등 졸업했다. 91년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한 오바마 대통령과는 2년간 학교를 같이 다닌 사이다. 시카고 대형 로펌 '프리본 앤 피터스'에서 상업 분쟁 소송전문 변호사로 활동해 온 이 판사는 시카고 교외에 살며 의사인 부인과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박기수 기자 kspark206@koreadaily.com

2012-05-08

[박춘호 기자의 시시각각] 이지훈 연방판사의 인준

이지훈(존 리) 연방판사가 7일 연방상원에 의해 인준을 받았다. 연방법원에서 대형 이슈가 되는 재판을 직접 진행하기 위해서 걸맞는 법률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갖춰야 하는 직책에 시카고 한인이 임명됐다는 사실은 경사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인회 창립 50주년을 맞는 올해, 시카고 한인 이민역사에도 큰 자랑거리다. 이번 인준 소식을 접하고 이민역사가 성숙되면서 한인들의 공직 진출이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판사에 앞서 김영배 판사 역시 2010년부터 시카고에서 연방판사로 재임하고 있다. 많고 많은 변호사 중에서 판사가 되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한국의 경우에는 사법연수원 성적이나 취향에 따라 판사와 검사로 진로가 결정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변호사나 검사로 충분한 법조 경험을 쌓은 뒤 선거에 출마해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방법이 있다. 카운티나 항소법원, 주대법원 판사 등이 그렇다. 아니면 이 판사의 경우와 같이 연방상원의 추천을 거쳐 대통령의 지명, 상원 표결로 최종 인준을 받아야 판사가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임명을 받으려면 판사로서의 수행 자질이 여러 단계를 통해 촘촘히 검증된다. 단순히 법률적인 지식만 따지는 것이 아니다. 이 판사의 경우에도 하버드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대형로펌에 근무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기도 했지만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무료법률상담을 하는 등 지역사회 봉사에 적극적으로 나선 점이 연방 상원으로부터 추천을 받게 된 주요한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법전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와 함께 사회 전반에 흐르고 있는 주요한 가치들을 충분히 공유해야 판사라는 직책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직책에 한인이 임명됐다는 것은 이민 역사의 결실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판사의 인준 과정을 보면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크리스토퍼 강 백악관 선임법률고문의 역할이다. 강 고문은 최근 타계한 강영우 박사의 아들로 시카고대학을 나와 백악관에서 대통령에게 법률자문을 하고 있다. 법률자문의 주요한 임무가 연방대법원 판사 등의 임명에 관련한 일이다. 따라서 이번 존 리 판사의 지명에도 강 고문의 보이지 않는 지원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연방판사의 인준 1단계인 연방상원의 추천을 받았더라도 백악관으로부터 낙점받지 못하면 안된다는 점에서 연방판사 인준절차상 강 고문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지난 1월 백악관은 복수의 추천자 중에서 이 판사를 지명한 바 있다. 워싱턴 D.C.에서 연방정부 부서에 근무하고 있는 한인에 따르면 강 고문은 소냐 소토마이요 연방대법관의 의회 인준을 무난하게 처리하며 백악관의 신임을 얻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이 판사의 인준에도 강 고문의 능력이 발휘됐을 가능성이 크다. 한인 공직자가 늘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한인사회의 역량도 이에 버금가게 증가하는 것 역시 관찰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이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깝게는 자녀들이 공직에 진출하는 것을 후원하는 부모의 역할이 있을 것이고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적극 후원하는 한인사회가 필요하다. 아울러 이렇게 성장한 한인 공직자들이 서로 힘을 합치면 한인 정치력 신장이라는 원대한 목표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앞으로도 제 2, 제 3의 이지훈 판사가 배출되기를 기원한다. polipch@koreadaily.com·편집국 취재팀장

2012-05-08

[인터뷰] "한인으로 연방판사 인준 큰 영광"…이지훈 연방 판사

“한인으로 연방 판사에 임명된 것에 대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를 지명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감사하고 추천하고 인준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준 딕 더빈·마크 커크 연방상원에게도 고맙습니다.” 7일 연방상원에서 인준을 받은 이지훈(존 리) 판사는 8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이 판사는 더빈 의원의 추천과 백악관의 지명, 상원 법사위 청문회, 상원 전체 표결을 거쳐 북일리노이 연방법원의 판사로 최종 인준됐다. 연방판사로 언제부터 업무를 보게 될 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종신제이면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야 하는 연방판사로 확정된 이 판사는 이날 “연방판사로 인준받았지만 겸손한 자세로 근무하겠다. 성원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판사의 아버지 이선구 씨도 한인사회의 지지에 대해 언급했다. 이 씨는 “한인 여러분들의 성원을 받은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들이 평소 가정과 사회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연방판사를 통해서도 계속 나타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광부로 일하며 간호사인 부인 이화자 씨와의 사이에 이 판사 등 3남을 둔 이 씨는 1970년 시카고에 이민 온 뒤 계속 거주하고 있다. 이 씨는 시카고에 사는 파독광부들의 모임인 동우회의 창립멤버로 전해졌다. 박춘호 기자 polipch@koreadaily.com

2012-05-08

상원 이지훈연방판사 인준…김영배 판사 이어 시카고 2번째 연방판사

시카고에서 두번째 한인 연방판사가 배출됐다. 연방 상원은 7일 전체회의를 갖고 이지훈(미국명 존 리) 북일리노이 연방판사 지명자에 대한 인준을 구두 표결로 통과시켰다. 이지훈 판사는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딕 더빈 연방상원의원으로부터 연방판사 후보로 복수 추천됐으며 1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바 있다. 1월 말에는 상원 법사위원회의 청문회를 통과한 뒤 상원 전체 표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지훈 판사에 앞서 지난 2010년 시카고에서 김영배 연방판사가 취임한 바 있다. 김 판사는 일리노이에서 아시안으로는 최초로 임기 8년의 연방 Magistrate 판사로 임명된 바 있다. 미주 전체에서는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인준 절차를 거치는 연방 판사에 이미 두 명의 한인이 임명됐다. 1971년부터 2004년까지 샌프란시스코 제9연방 항소법원에 근무했던 허버트 최 판사와 지난해 임명된 북가주 연방지법 루시 고 판사 등이다. 이지훈 판사는 루시 고 판사와 함께 현역 두번째 종신제 연방판사인 셈이다. 버논힐스에 거주하는 이선구·화자씨 부부의 3남 중 장남인 이지훈 판사는 시카고의 유명 로펌 ‘Freebone&Peters’의 파트너로 소송그룹에 속해 있으면서 반독점, 무역 규제, 지적재산권, 복합분쟁 등 상업부문 소송을 주로 다루고 있다. 부친 이선구 씨는 8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실 아들은 고교 재학 시절부터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 교사가 되고 싶어했는데 내가 법대를 졸업한 뒤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하버드 법대에 입학했다. 중요한 직책에 임명된 만큼 양심에 어긋남이 없이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교회 장로인 이 씨에 따르면 이지훈 판사도 윌로우크릭커뮤니티교회에 출석하며 무료 법률상담을 하는 등 지역사회 봉사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훈 판사는 시카고의 아시안휴먼서비스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지훈 판사를 추천한 더빈 의원은 성명서를 통해 “존 리 판사는 연방법원을 위한 뛰어난 선택이다. 존 리 판사의 인준은 일리노이연방법원에서 처음이고 한인으로는 두번째인 역사적인 일”이라며 “그는 법조계에서 훌륭한 경험을 쌓았고 지역사회봉사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했다. 앞으로는 북일리노이연방법원과 일리노이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에서 태어나 잠시 한국에서 지낸 뒤 시카고에서 줄곧 거주해 온 나온 이지훈 판사는 로욜라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와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다. 오바마 대통령과는 하버드 법대를 2년 간 같이 다닌 인연이 있다. 현재 인버네스에 살고 있는 이지훈 판사는 의사인 부인과의 사이에 1남 1녀가 있다. <알림> 시카고 중앙일보는 이지훈 연방 판사의 이름과 관련, 공식 영어 이름인 존 리(John Z. Lee) 대신 한국명인 이지훈으로 표기합니다. 이 판사에 앞서 연방판사에 취임한 김영배 판사를 공식 영어 이름인 영 김(Young Kim) 대신 김영배 판사로 표기하는 것과 통일하기 위해서입니다. 박춘호 기자 polipch@koreadaily.com

2012-05-08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